#2609

콘텐츠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요즘 어디서나 들려온다. 그런데 그 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10년 단위로 보여주는 기록은 의외로 드물지 않나 싶다. 『미라클 에디팅』은 그 드문 기록 중 하나다.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당신만의 취향을 돈이 되는 콘텐츠로"라는 부제에 붙잡혀 그대로 빌려 왔고, 아직 읽고 있는 중이다. 결론을 미리 조금만 흘리자면, 수익 공식을 기대하고 펼치는 책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판이 통째로 바뀔 때마다 감각을 고쳐 가며 살아남는 법에 대한 책이라 생각된다. 나처럼 블로그를 쓰면서도 내 취향이 남이 봐줄 만한 무언가가 되고 있는지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점이 오히려 더 반가운 대목.
디에디트, 카페를 전전하던 팀이 130만 구독 매거진이 되기까지
저자는 디에디트다. 2016년 퇴사 후 자본금 500만 원과 노트북 몇 대로 출발한 팀인데, 사무실도 없이 카페를 전전하며 시작했다는 서사가 저자 소개마다 따라붙는다. 지금은 웹사이트에서 출발해 유튜브, 인스타그램, 뉴스레터까지 아우르는 130만 구독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으로 소개되고 있다. 에디터 H, 에디터 M, 에디터 B 세 사람이 함께 쓰는데, 에디터 B는 전 동료였다가 합류한 케이스라고 한다. 『어차피 일할 거라면, Porto』라는 전작도 있다.
숫자만 보면 성공담인데, 이력을 늘어놓고 보면 생존기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웹사이트에서 유튜브로, 다시 인스타그램과 뉴스레터로. 지난 10년 사이에 콘텐츠 판이 몇 번이나 뒤집혔는지 생각하면, 130만이라는 구독자 수보다 그 변화를 그때그때 갈아타며 버텼다는 사실 쪽이 더 눈에 들어온다. 확실히 이 동네는 오래 버티는 것 자체가 실력인 것 같다.
잘 만든 것이 아니라 잘 팔린 것의 기록
책을 소개하는 문구 중에 이 한 줄이 가장 정직하다고 느꼈다. 잘 만든 것이 아니라 잘 팔린 것의 기록. 보통 이런 책은 잘 만드는 법부터 가르치려 드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잘 팔리는 쪽에 방점을 찍고 들어간다. 『미라클 에디팅』이 말하는 에디팅도 영상 편집이나 글 다듬기 같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의 선택을 움직이고 취향을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감각에 가깝다. 그러니까 플랫폼별 공략법을 외우는 게 아니라 플랫폼이 바뀌어도 따라가며 감각을 수정하는 태도가 본체라는 얘기다. 지금 당장 시작하고, 끊임없이 수정하며 살아남는 실행력. 말로 하면 쉬운데 그걸 10년 동안 실제로 해냈다는 게 이 책의 무게가 아닐까.
어차피 방문자가 많은 블로그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공들여 잘 썼다고 생각한 리뷰 글이 몇 편 있었다. 별로 호응이 없었지만. 잘 만든 것과 잘 팔린 것의 간극을 사실 나도 겪고 있었던 셈이다. 이 책을 앞에 두고 보니, 나에게 부족했던 건 글솜씨 이전에 시행착오를 통해 꾸준히 고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발견에서 지속까지, 목차가 먼저 말해주는 것
목차는 발견, 시도, 성장, 확장, 지속의 다섯 흐름으로 짜여 있고, 부록으로 세 에디터가 나누는 미라클 토크가 붙어 있다. 흐름의 이름 어디에도 돈이 앞자리에 없다는 점이 재미있다. 소제목들을 훑어보면 실행력, 독립과 창업, 내 콘텐츠의 소비자를 상상하기,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와 뉴스레터, 알고리즘, 그리고 좋은 콘텐츠 vs 돈이 되는 콘텐츠 같은 말들이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는 인스타그램 언저리가 제일 기대된다. 제일 관심은 있는데 제일 모르는 동네라서 그렇다 ㅎㅎ 감으로만 만지작거리던 걸 누가 옆에서 플랫폼별 역할로 정리해 준다면 마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AI가 다 만들어주는 시대의 에디팅
목차 뒤쪽에는 AI 시대의 에디팅이라는 말도 보인다. 요즘은 글이고 이미지고 영상이고 AI가 뚝딱 만들어주는 시대라, 만드는 기술 자체의 값은 점점 내려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럴수록 뭘 만들지 고르고 어떤 관점으로 보여줄지 정하는 안목이 사람 몫으로 남는 마지막 영역이 되지 않을까. 취향을 고르고 버리는 감각을 책 제목으로 밀고 나온 게 하필 지금이라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다.
AI로 글쓰기를 도와준다는 툴도 몇 가지 시험 삼아 써 봤다. 솔직히 내 수준에서는 나온 글의 좋고 나쁨을 판정할 수가 없더라는... 주제를 던져주면 여기저기서 짜깁기해 온 글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아웃풋을 판단할 지식과 경험이 정작 나에게는 있는가 묻는다면.. 글쎄?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얘기겠다. 그래서 AI 시대의 에디팅이라는 장에서 디에디트는 뭐라고 하는지, 그 대목이 더 궁금해진다.
완독 전이지만 미리 적어두는 판단
완독 전에 쓰는 글이라 총평은 아껴두려 한다. 다만 미리 짚어둘 한계는 있다. 디에디트는 애초에 이름부터 에디터인 사람들, 그러니까 고르고 다듬는 일이 본업이던 사람들이고, 그들이 버텨냈다고 해서 평범한 개인이 같은 경로를 그대로 밟을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 생각된다.
이 책이 어울릴 사람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콘텐츠를 시작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 나처럼 뭔가 하고는 있는데 방향이 흐릿한 사람, 그리고 취향이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지 궁금한 마케터나 기획자. 반대로 당장 써먹을 수익 공식만 찾는 사람이라면 기대와 결이 다를 수 있겠다. 빌린 책이라 본전 걱정은 없지만, 반납일 전에 다 읽고 돌려줄지 아니면 한 권 사서 옆에 두게 될지는 마저 읽어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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