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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역전하는 법 리뷰 - 죽기 전에 다 써라

by 믹스 2026. 8. 5.

#2613

결론부터 말하면 『역전하는 법』은 제목과 내용이 전혀 다른 책이다. 인생 역전의 비법 같은 걸 기대하고 펼치면 당황하게 되는데, 원서 제목이 『다이 위드 제로(Die with Zero)』, 그러니까 '잔고 0으로 죽어라'이기 때문이다. 돈을 모으는 법을 알려주는 책은 서점에 널렸지만 모은 돈을 언제 어떻게 쓸 것인지 정면으로 묻는 책은 의외로 드물어서,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읽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된다.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쓰는 것보다 모으고 미루는 쪽이 익숙한 사람이라, 읽는 내내 찔리는 대목이 많았다.

죽을 때 잔고를 0으로 만들라는 주장

오직 특정 시기에만 즐길 수 있는 경험도 있다. 책의 전제는 여러분이 ‘부의 극대화’가 아니라 ‘인생의 즐거움의 극대화’에 중점을 두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책의 뼈대는 단순하다. 인생은 결국 경험의 총합이고, 돈은 경험으로 바꿔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젊음과 건강을 갈아 넣어 돈을 모으다가 정작 그 돈을 쓸 체력도 시간도 남지 않은 나이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죽는 순간 잔고가 0에 수렴하도록 인생 전체의 지출 시점을 설계하라고 주장한다. 전체 9개 장이 각각 하나의 규칙으로 되어 있는데, 경험에 일찍 투자하라, 다 쓰고 죽는 것을 목표로 삼아라, 자녀에게 줄 돈은 사후 상속이 아니라 효용이 가장 클 때 미리 주어라, 재산 증식을 멈출 시점을 정하라, 잃을 게 적은 젊을 때 큰 리스크를 져라 같은 식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쓰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자원이 고갈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시기별로 경험을 배치하라는 쪽에 가깝다. 욜로(YOLO)식 탕진 권유로 요약하면 책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 될 듯하다.

여러분 인생의 경험에 투자하세요. 그리고 무조건 일찍 시작하세요.

이 문장이 사실상 책 전체의 요약이라 생각된다.

기억 배당이라는 계산법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돈 버는 데 다 쓰고, 그렇게 번 돈을 다 쓰지도 못하고 죽는다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너무나 많이 의미 없이 허비해 버리는 것…

완독하고 가장 오래 남은 개념은 기억 배당(memory dividend)이었다. 경험은 그 순간 소비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기억이라는 형태로 남아 두고두고 배당을 준다는 이야기다.

어떤 하나의 경험을 구매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경험만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경험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발생시킬 모든 배당의 총합을 구매하는 겁니다

젊을 때 한 여행이 수십 년에 걸쳐 회수되는 배당이라면, 경험도 투자처럼 일찍 할수록 복리가 붙는 셈이다. 트레이더가 쓴 책답게 소비를 투자의 언어로 번역해 주는데, 이 번역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돈과 건강과 시간이라는 세 자원이 인생 시기마다 다르게 부족하다는 정리도 그렇다. 젊을 때는 돈이 없고, 중년에는 시간이 없고, 노년에는 건강이 없으니, 그때그때 풍부한 자원으로 부족한 자원을 사는 교환을 계속하라는 것. 안개가 걷히는 기분까지는 아니어도, 미뤄둔 일들을 다시 꺼내 보게 만드는 힘은 확실히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멈칫하게 되는 대목들

다 쓰고 죽기란 단지 ‘돈’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거죠. 한정된 시간과 생명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누릴 수 있는 가장 충만한 삶에 순조롭게 이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반박하고 싶은 지점도 많았다. 저자가 드는 사례부터가 그렇다. 유명 가수를 불러 10만 달러를 쓴 생일 파티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잠깐 책을 덮을 뻔했다. 헤지펀드 매니저와 보통 사람의 '경험 투자' 사이에는 꽤 넓은 강이 흐르는 게 아닌가. 해외 독자 리뷰에서도 고소득자를 전제로 한 책이라는 비판이 반복해서 보이고, 애초에 잔고를 정확히 0에 맞추는 게 가능하냐는 지적도 있다. 내가 몇 살까지 살지 모르는데 0을 맞추라니, 이게 계산이 되는 문제인가? 수명 예측 도구나 연금 같은 보조 수단을 쓰라고 책도 나름의 답을 내놓기는 하지만, 한국의 연금과 의료비 사정에 그대로 얹기에는 미국 이야기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자녀에게 일찍 증여하라는 조언도 취지는 알겠는데, 실행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와닿는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노후 걱정이 곧 돈 걱정인 사회에 사는 처지에서 보면, 세속적일 수 있어도 그만큼 현실적인 우리네 사정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

아쉬운 점과 이런 사람에게 맞을 듯

아쉬운 점을 짚자면 우선 제목이다. 국내 리뷰에서도 '역전하는 법'이라는 제목이 내용과 동떨어진 낚시 아니냐는 비판이 여럿 보이는데, 원제를 그대로 살린 일본어판과 비교하면 더 아쉽다. '다 쓰고 죽는 법'이었다면 낚이는 독자도, 억울한 책도 없지 않았을까. 핵심 주장이 앞부분에 다 나오고 뒤로 갈수록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지적도 국내외 리뷰에서 공통으로 나오는데, 완독 해보니 부정하기 어렵다. 국내 서점 평점은 9점대로 높은 반면 굿리즈(Goodreads) 평점은 3.8점대로 온도 차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열광과 냉정 사이 어딘가에 있는 책이라는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그래도 모으는 데는 익숙한데 쓰는 데는 죄책감부터 드는 사람, 은퇴 시점과 지출 시점을 언제로 잡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된 사람이라면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 반대로 구체적인 재테크 기법이나 제목 그대로의 '역전' 노하우를 기대한다면 다른 책을 찾는 게 좋겠다. 책장을 덮고 나서 통장 잔고 대신 미뤄둔 일들의 목록부터 떠올렸다면, 책값 본전은 이미 뽑은 게 아닐까. 그나저나 잔고를 0으로 만들고 죽는 게 정말 가능한 사람이 있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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