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8

도입
좋아하던 활동에서 멀어지는 것만큼 자신감을 까먹는 일은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림 그리는 행동을 한동안 즐겁게 했는데(지금도 간헐적으로 하고 있지만), 스케치북과 펜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면서 서툴지만 나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기쁨이 있었다. 이전에 읽었던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이 다시금 불을 지펴줬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전의 열정이 꽤 식어버렸다. 학창시절엔 어떻게 그림을 즐겼는지 희안할 정도다. 스케치북 앞에 앉아도 "무엇을 그릴까" 자꾸 고민이 앞선다. 완벽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 제목이 붙을 만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자의식. 그럼 그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에 최근 「예술이라 부르지 마!」가 출간 된 것을 알고 도서관에 책 신청을 했었다.
저자와의 만남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을 읽었을 때 저자를 처음 알게 됐다. 당시 그 책은 정말 재미있게 읽혔고, 창의성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다만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너무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그림을 대하려 했던 것 같다. 마치 그 깊이 있는 사고 자체가 예술이라고 믿은 듯이. 그래도 한동안 멀리했던 그림을 그리는 행동 자체에 다시 심취할 수 있었고, 그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몇 년이 흘러, 저자의 신작 「예술이라 부르지 마!」를 알게 되었다. 제목만 봐도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의식에 시달리는 내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예술이라 부르지 마! — 자녀를 보며 배우다
이 책의 핵심은 역설적이다. 자신의 자녀들을 관찰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나누는데, 아이들은 자기가 뭔가 위대한 것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손을 움직인다. 색을 칠한다. 자기 의식 없이 놀이하듯, 그저 그 순간을 즐긴다. 반대로 어른이 되면서 나타나는 것들은 뭘까. 평가의 두려움, 완벽함에 대한 집착,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자문. 책의 목차만 봐도 이 주제가 얼마나 촘촘하게 짜여 있는지 알 수 있다. "매뉴얼을 버려라", "과도한 심각함을 피하고", "모른다는 것을 포용하라"—각 섹션이 모두 우리가 자녀 같은 순수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완벽주의와 딱딱한 규칙에서 벗어났을 때, 역설적으로 더 정직하고 독창적인 창작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책의 중심 메시지다.
너무 깊게 생각하는 나에게 건네는 말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일종의 해방감이라 할까. 내가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즐기는 행동 자체가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상황—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다 손이 멈추는 악순환, 프로젝트가 많을 때는 피로함 속에서 스케치북을 멀리하고, 휴일이면 늘어져 있기만 하는 것—은 사실 저자가 말하는 "자의식"과 "규칙 집착"의 결과였다는 게 명확해졌다. 완독해보니, 저자는 단순히 "규칙을 버려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더 자유롭고 정직한 창작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역설이 바로 이 책의 힘이다.

마무리
이 책은 누구를 위한 책일까. 확실히 창작 활동을 하다가 완벽주의에 갇혀버린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듯하다. 그림, 글, 음악, 뭐든 자신이 하는 창작 행동이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또한 창의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읽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강조하는 것은 "예술을 하려면"이 아니라 "그저 만드는 행동 자체의 순수함"이기 때문이다. 다만, 책의 메시지 자체는 명확하지만 실제로 "자의식을 내려놓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피로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스케치북을 꺼내기, 완벽하지 않은 것을 용납하기—이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는 내내 자신의 창작 습관을 돌아보게 하고, 그러면서도 순수하게 만드는 행동 자체로 돌아갈 용기를 준다. 완벽주의와 자의식에서 벗어나 다시 즐겁게 창작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이 그 길을 비춰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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